자막 제목 with Caption Creator 4

겨울도 거의 끝나갈 무렵

13살이 된 나는

스테이시 선생님의 과제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저기요

프로포즈란 건 어떤 걸까요?

매튜는 프로포즈한 적 있어요?

 

없어요

나도 매튜도 결혼을 안 했으니까

뭐니, 갑자기?

학교 숙제로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어른의 로맨스 이야기예요

그래서 프로포즈 신을 쓰고 싶은데

상상만으로는 부족해서

린드 아주머니께라도 물어볼까요?

이야기란 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건지

그런 거에 흥미를 갖는 건
더 어른이 되고 나서 하렴

 

어머, 저 그렇게 언제까지고
어린애는 아니에요

아직도 한참 어린애예요

 

작문을 제출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스테이시 선생님도 참

다음엔 스스로 생각한 이야기를 쓰라니

어머, 재미있잖아

난 어느분처럼 상상력이 없는걸

앤의 이야기는?

벌써 다 썼어?

 

이제 조금만 더 쓰면 완성이야

 

그건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아,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눈물 날 것 같아

 

우리들 앞으로 2년만 있으면
정말 어른이 되는 거야

아직 한참 어린애예요

 

어른이 되면

지금보다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될 거야

 

앞으로 4년만 있으면
머리를 땋아올리게 되겠구나

맞아

 

숲의 음유시인!

 

내가 저 아이에게 붙인 이름이야

 

거기 서!

 

그래

저 아이를 다이애나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하는 게 어때?

뭐야, 그게!

 

앤 셜리

미래를 읽을 수 없어서 다행이야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도

맘대로 쓸 수 있으니까

마음을 읽을 수 없어서 다행이야

숨결 하나

사랑스러움을 알게 돼

수다쟁이 풀도

변덕쟁이 구름도

태어난 이유 같은 건

아마 모르겠지만

가르쳐줬어

세상은 재미있다는 걸

계속 앞으로도

여기서 기다릴게, 기다리고 있을게

꿈은 부끄럼쟁이라서 숨바꼭질을 잘해

눈을 감고 있어, 아아, 아직이야?

너에게도 만나게 해주고 싶으니까

여기서 기다릴게, 기다리고 있을게

기대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손꼽아 기다릴게, 너는 태양이야

마중 나와줄게

그런 예감만 계속 갖고 있어

 

제6화
빨간 머리 만큼, 싫은 건 없다고 생각했어

 

잘한다, 지미!

 

어린애네

 

내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의 코델리아와

금발에 보랏빛 눈동자를 가진 제랄딘

미모의 소녀 두 사람은

같은 마을에 사는 마음의 친구였다

잠깐만!

제랄딘은 앤처럼
빨간 머리가 더 좋지 않아?

빨간 머리는 안 돼

이야기의 주인공에겐
어울리지 않는걸

그런가?

그래

역시 다이애나처럼 검은 머리나

루비와 같은 금발이 아니면 안 돼

그리고 또 한 명의 등장인물은...

길버트!

버트...
좋았어!

 

미안

 

되게 못하네

다음은 나!

해봐, 해봐!

저 애들에게 어른이 될 날이 올까?

 

또 한 명의 등장인물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버트람이야

제목은...

 

연적, 죽어도 마음의 친구

 

용모는 수려하지만
가난한 복장의 청년 버트람은

16살이 된 제랄딘에게
첫눈에 사랑에 빠졌어

 

그러던 어느날

 

제랄딘을 태운 마차가
폭주를 시작하는 거야

도와줘요!

 

그런데 그곳에 버트람이 달려와서

간발의 차로 제랄딘을 구출

 

버트람은 기절한 제랄딘을 안고

3마일의 거리를 데려다줬어

 

그래서?

그래서 두 사람은 어떻게 돼?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돼

버트람은 머지않아

제랄딘에게 프로포즈하게 됐어

 

멋져!

어떤 프로포즈야?

그건...

버트람은 어떤?

어떤 식으로 프로포즈해?

 

내 상상력으로도
쓸 수 없는 게 있어, 다이애나

 

그래?

잘한다!

 

나도 해보고 싶어

좋아

빌려줄게

정말?

고마워

루비라면 언니들이 많이 결혼했으니까

프로포즈에 대해서 알지도 몰라

 

그렇구나

분명...

언니의 연인인 마컴이

농장 후계자가 되면
가정을 꾸리자

라고 말하고

언니는

좋아!

안 돼!

어떡해!

라고 말하고

 

그렇게 약혼한 거야

 

그, 그것뿐이야?

무릎 안 꿇었어?

설마!

요즘은 아무도 그런 거 안 해

 

프로포즈 장면은
역시 상상력으로 쓸래

프로포즈?

 

미안, 미안

스테이시 선생님의
숙제라고 들었어요

색다른 수업을 하는
선생님인 것 같지만

 

귀중한 공부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앤은 즐거운 것 같았어

 

그야 마릴라의 걱정은
끊이지가 않겠죠

아무리 머리가 좋고
마음씨가 곱다 해도

앤은 변덕으로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아이니까요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라, 앤

린드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안녕

 

좀 더 조용히 돌아올 순 없는 거니?

 

버트람은 제랄딘 앞에서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 프로포즈를 해

무릎을 꿇는구나!

버트람은

당신의 아름다움과 반짝임엔
한참 못 미치지만, 이라고 말하면서

반짝이는 보석이랑
유럽으로의 신혼여행을

제랄딘에게 바치는 거야

 

버트람은 가난한 청년이 아니었구나

맞아

실은 엄청 부자였어

기다렸지?

 

한편

제랄딘의 약혼을 안 흑발의 코델리아는

분노에 떨었고

오랜 시간의 우정은
증오로 변했어

어째서?

왜냐하면...

코델리아도 남몰래
버트람을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코델리아는 제랄딘의
마음의 친구인 척 행동하면서

어느날 저녁에 그녀를 불러내서

 

그런데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버트람이

지금 구해주겠소, 나의 사랑 제랄딘!

하며 물 속으로 뛰어들어

 

두 사람은 죽어버린 거구나

코델리아는 마음의 친구와

첫사랑이 함께 잠든 그 무덤 앞에서

후회하다 못해 제정신을 잃고

비탄에 빠졌어

 

너무 불쌍하잖아!

너무나 슬픈 이야기야

 

어떻게 하면 그런 멋진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거야?

나도 써보고 싶어

우리들 지금부터 너의 학생이야, 앤

 

이렇게 우리들의 이야기 클럽이
결성되었습니다

 

다이애나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나오자마자 계속 죽어버리는구나

그게 어떻게 이야기를 진행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어서

그렇다면 차라리

범인을 찾는
미스테리로 하면 어떨까?

숲의 음유시인을
명탐정으로 하는 거야

 

재밌을 것 같아

하지만 내가 쓸 수 있을까?

걱정 마

아이디어라면
여기에 산더미처럼 많아

제인의 이야기는 너무 진지하니까

연애 요소도 넣으면 어떨까?

 

애들 앞에서 읽는 거잖아

부끄러워

 

그럼 좀 더 진지하게 해서

뭔가 사람들을 위해서...

그래!

교훈을 넣어보면 어떨까?

착한 사람이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이야기를 만드는 거야

그렇구나

 

그럼 루비

너의 이야기는
프로포즈 장면이 너무 많아

하다못해 3번 정도로...

얘, 잠깐, 듣고 있어?

 

그래서요

이야기 클럽에서는

앞으로 1주일에 한 번씩
이야기를 써서

다 함께 서로 읽기로 했어요

 

지어낸 이야기 같은 건

읽는 것도 나쁘지만
쓰는 건 더 나빠

 

하지만요, 마릴라

우리들 이야기에 교훈을 담기도 해요

유익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생각하지 않아

 

이렇게 숲의 음유시인은

숲에서 일어난 무서운 연속살인사건이

실은 독버섯을 너무 먹은

먹보들을 향한 천벌이라고
수수께끼를 풀고

다시 한 번 숲속 깊은 곳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고마워요, 다이애나 배리

무척 재밌었어요

 

넌 사람을 인도하는 일도
잘하는 모양이구나, 앤 셜리

 

그게 좀 이상해요

다이애나가 말이에요

꽤 까다롭고 독서가인
조세핀 할머니에게

이야기 클럽을 대표해서

이 작문집을 보내드렸대요

 

그랬더니 말이에요

이렇게나 웃은 건 오랜만이라고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모양이에요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였겠지

그게 아니에요, 매튜

할머니가 읽은 것은

전무후무한 비극이에요

제인도 루비도 엄청 울었어요

 

목사님도 같은 곳에서 웃었어요

 

가장 울었으면 하는 곳인데

어째서?

 

자막 *isulbi*

 

안 돼!

 

우리가 앤과 살기 시작한 후로는

온기가 없는 썰렁한 초록지붕집으로
돌아오는 일도 없어졌다

 

앤!

 

없나?

 

또 어딘가를 싸돌아다니는 거겠지, 분명

 

이야기 클럽이든 성가대 연습이든

다 그만두게 해야 해

정말이지

 

언제였던가 레이첼에게

앤은 변덕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얘길 들어서

나 정말 화났었어요

 

그 아이 결점은 있지만

한 번도 시킨 걸
안 하거나 하진 않았는데

 

앤에겐 정말 실망이에요

글쎄다

 

숨을 헐떡이며
저 길을 뛰어올 때가 됐다고요

도로 근처까지 마중나가볼까?

 

등을 가져오겠어요

 

앤?

거기 있니?

 

앤?

 

앤, 너 자고 있었니?

무슨 일이니?

몸이라도 안 좋니?

아니에요

 

매튜!

앤 여기 있어요!

 

자, 앤 일어나서 저녁밥...

오지 마세요!

제발 저쪽으로 가세요, 마릴라!

부탁이니까 절 보지 마세요!

앤, 대체 무슨 일이니?

아, 마릴라!

전 지금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어요!

이제 누가 반에서 1등이 되든

좋은 작문을 쓰든 상관없어요

왜냐면 이제 두 번 다시
아무 데도 갈 수 없는걸요

제 인생은 끝났다고요!

 

앤 셜리!

 

앤!

 

마릴라

 

보세요, 이 머리카락을

 

너, 그 머리카락

 

슬슬 무슨 일이
벌어질 때가 됐다고 생각했단다

 

이게 무슨 일인지

머리를 염색하다니

나쁜 일이라는 생각을 안 한 거니?

그건 나중에 뭔가 좋은 일을 해서
메꿀 생각이었어요

 

만약 내가 머리를 염색한다면

좀 더 좋은 색으로 염색하겠지만

저도 초록색으로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틀림없이 아름다운
흑발이 될 거라고 들어서

그걸 믿었다고요

앤, 누굴 말하는 거니?

낮에 행상인이 왔었어요

 

행상인이?

엄청 좋은 사람으로 보였어요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해서

전 정말 감동을 받아서

뭔가를 사서 도와주려고 생각했어요

진귀한 물건이 많이 있었어요

그러다 머리 염색약 병이
눈에 들어와서

 

50센트밖에 없다고 했더니

원래는 75센트지만

그거면 된다고 해서

 

안 돼!

 

죄송해요

오, 마릴라

머리가 이렇게나
무서운 색이 된 걸 본 순간

저 후회했어요

계속 후회하고 있었어요

그 후회가 뭔가에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어때요?

소용없구나

행상인이 이 염색약은
감아도 절대 안 빠진다고 했어요

그것만은 진실이었던 모양이구나

적어도 허영을 부린 결과를

그 눈으로 똑바로 새겨두도록 해라

 

걱정하지 마, 앤

네 머리카락에 대해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고

앞으로도 계속 죽을 때까지
말하지 않을 거야

 

난 초록지붕집의 초록 머리 앤이야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제일 불행한 여자애야

 

각오는 됐어요!

제발 싹둑 잘라서 끝내주세요!

정말 괜찮은 거지?

네!

 

마릴라

만약 방해가 안 된다면

머리카락을 자르는 동안
울어도 돼요?

 

그래, 울어도 돼

 

머리카락이 자랄 때까지
다시는 거울을 보지 않겠어!

 

아니, 볼 거야!

지금 자신이 얼마나 추한지!

 

상상으로 달래거나 하지도 않을 거야!

 

이게 나...

 

지금의 나...

 

다이애나는 뭔가 아는 거 아니야?

앤의 절친이잖아?

 

허수아비 같아

 

영원히 빨간 머리만큼은
좋아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어

 

빨갛고 긴 머리카락은

나다워서 나쁘지 않았어

 

그럼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중한 것은 마음의 틈새에 간직해두니까

어느새 지나가는 거리의
꽃 하나도 지나치지 않도록

아침 햇살에 놀라서
밤의 어둠을 응시한다면

동경했던 세계를 눈 바깥쪽에서도
잘 찾아갈 수 있어

우울함이 자욱하네

소나기는 언젠가 그칠 거야

그 눈으로 그 귀로

느낀 것이 전부라고

마음이 원하는 쪽으로 걸어갈 거야

너는 쉽게

 

다음 시간
실패만 해왔지만, 하나를 할 때마다
자신의 나쁜 부분이 고쳐져 갈 거야